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i-43 하야부사 (문단 편집) == 배치 및 활약 == 이렇게 하야부사의 양산과 배치가 결정된 것은 1941년 4월로 이 때가 황기 2601년이었으므로 '육군 1식 전투기'란 공식적인 명칭이 붙게 됐다. 여기에는 해군의 [[제로센]]이 1940년에 양산되어 0식 함상 전투기가 됐으니 육군에서는 해군보다 더 최신 전투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1식 전투기로 붙였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든 기동성 향상 문제로 양산이 좀 늦어졌던 까닭에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아직 제대로 배치되지 못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개전 초기 일본군 육군의 실질적인 주력기는 Ki-27이었다. 이 무렵 일본의 [[남방작전]]에 대항하고 있던 연합군의 주력전투기는 [[F2A 버팔로]]였다. 당시 연합군은 본토가 오락가락하던 [[영국]]의 사정과 전쟁준비가 미처되지 않은 [[미국]]의 사정이 겹친 것도 있고, 일본의 항공기술력을 얕잡아보고 있었기에 이 정도 기체면 쌈싸먹고도 남을거라 판단했다. 물론 개전 초기 주력이던 Ki-27을 상대로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신예기 Ki-43에게는 역부족이었고, 동남아 지방에 배치된 연합군 조종사들의 실력도 중일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일본군 조종사들에 비하면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탈탈 털리고 말았다. 다만 당시 육군에서는 신형 전투기의 존재 자체를 극비에 붙였기 때문에 연합군은 물론이고 일본 내부에서도 그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반면 해군에서 운용하던 제로센은 이미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하야부사는 제로센에 비해 약간 가냘프게 생겼다는 점을 제외하면 쉽게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게 생겨먹은 특징이 있었다. 이로 인해 연합군은 Ki-27이 아닌 저익단엽기를 보면 죄다 제로센으로 보고해버렸고,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연합군을 상대로 완벽한 연막을 치게 되는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불구대천지원수'''라고 해도 좋을 해군의 제로센에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심지어는 "레이센이 중국에서 맹활약했대! 우리 해군 짱이다!"라는 말이 나오자 [[열폭|약이 바짝 오른]] 육군은 결국 1942년 공식적으로 하야부사의 존재를 공표하고 제로센 못지 않은 맹활약을 펼친 기종이라면서 대대적인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전선이나 동남아 전선 초창기, 일본 해군이 작전하지 않은 곳에서 그 유명한 [[플라잉 타이거즈]]같은 부대에서 교전하고 격추시킨 일본 단엽 전투기는 보고와는 달리 제로센이 아니라 하야부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통칭 '카토 하야부사 전투대' 로 유명한 64전대는 지상 레이더와 숙련된 조종사를 앞세워 항복하는 날까지 영국 및 미국의 신예기와 전투하면서 대등한 킬레이쇼를 달성했다. 또한 미군 등의 전투기에 비하면 방어력이나 생존성에서 한 수 아래로 일본기 일반의 방어력과 내구성 부족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원샷 라이터로 악명을 날린 해군기들과 비교하면 조종석 보호장치와 같은 기본은 갖췄을 정도로 신경은 썼다. 그런데 이렇게 최소한의 기본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조 히데키가 강력히 주장한 결과였다고 한다. 또 해군기들처럼 '장대한 항속거리'에 목숨거느라 아무 안전설비도 없이 익내 연료탱크를 달고다니는 상태는 아니었으니 그나마 나았을지 모른다. 물론 기본적으로 제로센과 비슷한 시점에 등장한 기종이고, 엔진기술이 받쳐주지 않는 채 경량화를 통한 고기동성을 추구한 방향도 비슷하기에 전쟁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이미 성능으로는 시대에 뒤쳐진 전투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중전 플랩 등을 통해 저속선회전에서는 여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래도' 제로센에 비해서는 튼튼한 기체였기에 위험성은 존재하는 기종이었다. 이에 연합군 조종사들은 "하야부사와 저속 선회전하면서 놀면 안된다"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그러나 '30구경 2정 → 30구경 1정 + 50구경 1정 → 50구경 2정'의 소소한 화력은 전쟁 내내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물론 하야부사가 개발되던 시점엔 다른 나라의 전투기들도 30구경급 기관총 같은 무장을 여전히 일반적으로 사용하기는 했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전금속제 단익기의 시대가 되며 갈수록 견고해지는 항공기를 상대로 30구경급 화기만을 믿기는 부족하다는 인식도 확산되던 시기이다. 그 결과 이미 1930년대 말이 되면 12.7~13mm 급 중기관총이나 20mm급 기관포도 전투기용 무장으로 속속 채택되던 시기이다. 이를 염두에 두지 않은 탓에 하야부사는 내내 화력부족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하야부사의 화력문제는 원래 일본군이 경전과 중전 믹스 개념을 채택하여 장거리 폭격기의 호위전투기로 적 전투기를 주로 상대할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경전투기 하야부사와, 적 폭격기를 요격하는 고화력 중전투기 [[Ki-44 쇼키]]란 투톱 체계를 구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개전하고 나니 전투기조차도 갈수록 튼튼해진 탓에, 이 투톱 체계는 당초 생각한 것과 달리 신나게 [[삽질]]한 격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전쟁 초반 싸웠던 [[F2A 버팔로]]같은 경우는 다수 형식이 방탄판이나 방탄유리, 자동방루 연료탱크 등을 장비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초기형 F2A-1, F2A-2와 네덜란드군이 사용한 B-339C,D는 원래 없었고, 방탄판 등이 도입된 후기형 F2A-3이나 영국군의 B-339E도 기체가 중량증가를 버티지 못해 급격하게 비행성능이 악화된 탓에 다시 철거하고 운용한 사례가 많았다.] 이런 소소한 화력도 이빨이 먹혔는지 모르지만 전쟁 중,후반부에 마주칠 전투기들은 빼고라도 [[P-40]]이나 [[F4F 와일드캣]]만 되어도 버거운 무장인 것은 틀림없다. 일례로 전쟁 초기부터 하야부사와 (제로센인줄 알고) 전투를 벌였던 [[플라잉 타이거즈]]가 일격이탈 전법과 함께 즐겨 사용했던 것이 바로 '헤드온 대결'이었다. 이는 P-40이 하야부사에 대해 기체의 방어력이나 내구도로도 우세할 뿐 아니라, 화력면에서도 우세하기 때문에 활용되었고 또 나름 재미를 본 것. 그런데 사실 공랭식 엔진 전투기와 수랭식 엔진 전투기가 헤드온으로 싸우면 '원래는' 공랭식 엔진인 쪽이 유리해야 한다. 단 적기의 엔진에 쉽게 타격을 줄 만큼의 화력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기본 맷집도 빈약한데다 (특히 초기형)이라면 7.7mm 두 정 혹은 7.7mm와 12.7mm 1정씩을 쏘고 있을 하야부사에 대해, 애초 맷집도 더 좋은데다 그 2배를 넘는 화력 - 12.7mm 2정에 7.62mm 4정을 퍼붓는 플라잉 타이거즈의 P-40B의[* 물론 12.7mm 4-6정, 심지어 8정을 사용하던 이후 미군 전투기들과 비교하면 사실 이쪽도 소소한 화력이다.] 대결이라면 하야부사가 공랭식 엔진이라는 것은 별 상관도 없어진다. 그냥 더 많이 쏘고 더 많은 피탄을 버틸 수 있는 쪽이 유리한 싸움이 될 뿐이고 이런 전투라면 P-40이 더 유리해진다.[* [[Ki-84 하야테]] 문서에 '하야부사인 줄 알고 헤드온을 걸었다가 날아오는 탄환을 보고 기겁하는' 미군 조종사의 일화가 있는데, 뒤집어 말하면 하야부사였다면 헤드온을 걸어볼만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하야부사의 맷집도 맷집이지만 (어차피 이는 일본기 대부분의 공유사항인데다, 제로센 등에 비하면 하야부사는 그보다는 나은 편이었으니) '펀치력' 부족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A6M3-22형 이전의 제로센이 99식 기관포의 저성능 탓에 거의 7.7mm 두 정으로 대 전투기 전투를 하다시피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실제 전투에서 발휘되는 화력으로는 하야부사가 제로센에 비해 딱히 더 나쁜 것도 아닐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제로센에 비해서는.] 그 후에도 하야부사는 최대 12.7mm Ho-103 기관총[* 브라우닝 M2 중기관총 (초기형인 M1921)의 복제판. 그러나 사용 탄약이 [[.50 BMG]] 보다 위력이 낮은 'Breda 12.7mm×81SR'이라 오리지널 보다 위력은 떨어진다. 대신 발사속도는 약간 더 높다. 그래도 일본군이 사용하던 항공기관총 중에는 나름 준수한 물건이다. 달랑 1~2정 탑재한 것이 문제일 뿐. 그런데 일본군이 사용한 '브라우닝 M2'의 카피판 중기관총은 Ho-103만이 아니었다. 육군에 12.7mm Ho-103이 있었다면, 해군에는 브라우닝 M2를 기초로 사용탄을 일본해군이 사용하는 13.2mm 호치키스탄으로 바꾼 '3식 기관총'이 있었다. 제로센 52형 '을'부터 탑재된 바로 그 기관총. 즉 같은 '브라우닝 M2'를 육군과 해군이 각기 따로 베낀 것. 다론 애초 포도 아니고 소총, 기관총의 탄약규격까지 육군과 해군이 따로 썼다는 점에서 첫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이지만.] 2정이라는 소박한 무장만 지닌 채 방어력, 화력, 기동성에서 한 수준 이상 더 강력한 연합군 전투기들을 상대해야 했다. 아무튼 이 상황에서도 좀 더 효율적인 공격을 위해 '12.7mm 고폭탄' 같은 것도 사용했다.[* 덧붙여 어째선지 일본군은 12.7mm Ho-103을 'cannon'으로 분류했다.] 이는 앞서 말했듯 12.7mm급 화기치고는 약간 약한 탄을 사용해서 일반적인 철갑소이탄 등을 사용했을 때의 관통력이나 파괴력이 다소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브레다 12.7mm×81SR탄을 사용하던 이탈리아군도 '12.7mm 고폭탄' 같은 걸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역시 고폭탄을 사용하기엔 너무 작은 구경의 화기라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게다가 당연히 장갑방호 부위에 대한 관통력은 철갑탄이나 일반탄보다 미미했다. 그럼에도 화력부족을 조금이라도 벌충하기 위해 많은 기체들이 종종 탄약전부를 이 탄종으로, 혹은 고폭탄과 소이탄으로 채워 운용하기도 했다. 그나마 대전 후반에 [[Ho-5]][* 문서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Ho-5는 소련의 베레진 UB 중기관총과 B-20 기관포의 경우처럼 Ho-103의 확대버전격인 기관포로 역시 '브라우닝 M2'에 기반한 것.]라는 나름 적절한 성능을 가진 20mm 기관포가 개발되어 하야부사의 기수에 장착될 수 있었으나 이 때는 이미 전세가 기울어 이 기관포 장착형은 몇 기 생산되지도 못했다. (그런데 애초 주익에 무장탑재가 가능하게 설계했으면 이런 고생을 할 일도 없었을 것 같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